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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 2019 .03

졸업

도쿄공예대학 예술학부 디자인학과

예술학 학사, 병역을 위한 휴학 기간 2년 포함.

2015 .04 - 2017 .01

만기 전역

육군 제9보병사단

병역 기간

2023 .03 - 2023 .06

수료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 미술품 감정사(입문)

입문 과정

About Me

25년 전 어느 날, 나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거대한 돌로 지어진 건물에 갔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처음 본 어린 나에게 그것은 낯선 충격이자 끝없는 궁금증이었다. 나는 물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엄마는 대답했다. “가우디라는 사람이 만든 작품을 보러 온 거야.”


그곳은 세종문화회관이었고, 우리는 안토니 가우디의 전시를 보러 갔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예술에 대한 첫인상이자, 관심의 시작이었다.

Education

Skills

5/3

HTML/CSS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웹사이트 개발 및 유지 보수 작업에 사용했으며, 실제 운영 중인 서비스 개발 경험이 있습니다.

Ae

Adobe After Effects

거의 대부분의 기능 사용이 가능하며, 툴을 활용한 모션 및 컷 영상, 광고 영상 등 다양한 작업 경험이 있습니다. 영상 작업에 있어서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Ai

Adobe Illustrator

거의 대부분의 기능 사용이 가능하며, 툴을 활용한 출력물 전반, 패키징, 패턴 등 다양한 작업 경험이 있습니다.

F

Figma

대부분의 기능 사용이 가능하며, 웹사이트 초기 디자인 및 UI/UX 작업에 주로 사용했습니다.

Id

Adobe InDesign

카탈로그, 소책자 등 서식 문서 레이아웃 작업에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J/P

Java(Next JS)/Phyton

일부분의 상황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웹사이트 개발 및 유지 보수, 업무 자동화에 사용했으며, 실제 운영 중인 서비스 개발 경험이 있습니다.

N2

JLPT N2(일본어 공인 자격)

일본어 공인 자격증 2급을 취득하였으며, 다년간의 일본 거주 경험을 통해 비즈니스 레벨의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Pr

Adobe Premiere Pro

영상 소재의 컷 편집을 위해 사용했었습니다. 컷 편집 및 오디오 작업과 기본적인 모션 작업이 가능합니다.

Ps

Adobe Photoshop

거의 대부분의 기능 사용이 가능하며, 툴을 활용한 보정 및 합성, 배너, 그래픽, 아트 등 많은 작업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픽 작업에 있어서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20 .06 -2021 .10

영상팀 모션 디자이너

주식회사 비디오 몬스터

Adobe After Effects를 기반으로한 모션 그래픽 영상을 제작 후 템플릿화 하여 “미리캔버스“ 와 같은 형태로 제공하는 기업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모션 템플릿의 기획 및 구성, 제작 까지 실무 작업의 전반을 담당하였습니다.

2022 .02 - 2024 .03

PM(프로덕트 매니저)

주식회사 리치즈

일반적인 배너, 그래픽, 출력물, 패키징, 모션 그래픽, 컷 영상 등의 디자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작업을 하였으며, 제품의 촬영 및 보정 작업도 맡아서 하였습니다. 또한 초기 브랜딩 가이던스 작성 및 관리, UI/UX, 웹 개발 및 유지보수와 같은 업무도 담당하여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2024 .06 - 2025 .08

브랜드 총괄

주식회사 헤이러너스

디자이너를 넘어, 문제 해결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안된다면 어떻게 하면 되게 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디자인 업무는 물론, SNS 관리와 마케팅 집행 같은 마케터의 역할, 그리고 경영적 시각까지 함께 고민하였고, 한 가지 일에만 머무르지 않고 싶었던 마음은 결국 저를 한층 더 성장하게 만드는 시간이였습니다.

Works

001

이런 걸 내가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학생 무렵, 친구의 제안으로 보게 된 애니메이션은 나에게 작은 불씨를 만들어주었다. 삶에 있어서 처음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길을 제시해 준 사건이었다.

002

그림을 그리고 싶다.

막연한 생각을 품은 채 나는 디자인과가 있는 고등학교에 지원해 다니게 되었고, 그 시간은 내게 큰 변화를 안겨 준 시기였다. 회화, 설치미술 같은 순수 미술 작품을 제작해 전시하기도 하고, 놀이공원 설계와 같은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경험하며, 이 시기에 나는 단순히 다양한 경험을 좋아한다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가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경험들이 나를 빚어 갔고, 삶 속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때 조금은 더 나은 판단과 사고를 이끌어 내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더 많은, 더 새로운, 더 넓은 경험을 갈망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유학을 결심한다.

003

6개월 안에 JLPT(일본어 자격증)를 2급 이상 취득하면, 유학을 보내주겠다.

아빠의 말이었다. 아마 내 삶에서 처음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아닐까. 아침 여섯 시에 시작되던 하루는, 집에서 학교까지 한 시간 반가량 이어지는 통학길 버스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으로 열렸다.


일본 대학의 입시 과정은 다양한 분야의 준비를 요구했다. 서류 전형에 제출하는 소논문과 실기 현장에서 치러지는 논술 시험을 위한 미학, 예술학, 철학 등 미술 이론, 그리고 면접과 일본어 시험, 여기에 미술 실기까지 병행해야 했다.


그 탓에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겨서야 잠드는 생활이 1년 넘게 이어졌다. 그렇게 버텨 마침내 바라던 자격증을 취득했고, 입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손에 쥘 수 있었다.

004

나의 첫 해외여행은 실기 시험을 위해 일본에 갔을 때였다.

유학을 가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그 열망 하나로 달려왔던 나에게 모든 낯선 풍경은 행복과 벅찬 감정을 안겨주었다. 문득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질수록, 오히려 나태해지고 안일해진다.”

005

대학교 시절, 가장 선명한 기억은 끝없는 프레젠테이션과 토론이었다.

전공 과목의 경우, 본인의 작품에 대하여 제작 초기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청중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청중 평가와 교수 평가를 종합하여 과제의 점수가 매겨지는 방식이었다. 교양 과목 또한 자신의 생각과 논리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매우 많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 자체가 떨리기도 하고, 조금은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말하는 방법과 자세, 주장과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와 같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을 배우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게 된 듯하다.

006

엄마는 풀과 산, 초록을 좋아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다니며, 시야를 가득 채우는 초록빛 향연을 맛볼 기회를 참 많이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정원 디자이너가 될 거야.”

그렇게 엄마는 정원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엄마의 나이는 이미 중년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밤낮없이 공부하던 기억 속의 엄마는, 내가 이전까지 본 적 없던 열망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말대로 꿈을 이루어낸 엄마를 보며, 하고자 한다면, 하고 싶다면, 열망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두려움 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007

최근 퇴사 후의 시간은 나를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퇴사 직후에는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개발하고 작업물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작업이 어느 정도 정리된 시점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집을 나서 갤러리와 미술관을 찾고, 연주회에 가고,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들어보며, 고즈넉한 거리를 거닐기도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 글을 쓰기도 하며,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일정은 무계획이었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나아가며 흐르는 대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좋은 것이 있으면 구경하고, 마음에 남으면 기록하며 나날을 보냈다.


이런 시간들이 결국 나를 성숙하게 하고, 앞으로 만들어 갈 것들의 라이브러리가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Me

001

나의 첫 여정은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애프터 이펙트를 기반으로 모션 템플릿을 제작했으며, 기획부터 제작, 마무리까지 모두 혼자 진행했다. 당시에는 자체 개발한 엔진으로 애프터 이펙트의 프로젝트 구조를 읽어와 템플릿화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엔진에 맞춰 내부 프로젝트의 구조를 짜야 했고, 내가 원하는 연출이나 디자인이 구조상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구조적 문제를 회피하거나 우회해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했고, 덕분에 디자인이 프로그램 개발적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구조화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익숙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002

두 번째 여정은 전업투자였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홀로 투자하던 시절이 있었다. 경력이라 부르기엔 애매했지만, 내게는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시간이었고, 작은 성공에도 가슴이 뛰었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할 수 없으리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도전했다.


그러나 “돈”이라는 것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능과 충돌하며 삶을 거세게 흔드는 태풍 같았고, 나는 갈대처럼 휘청이며 그 안에서 나를 지켜내야 했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돈은 무엇인가. 나에게 돈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하면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설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힘든 순간에도 마음을 어떻게 다잡아야 하는가.


그 물음들은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삶의 기둥을 세워준 값진 시간이었고, 지금도 내 안에 오래 여운으로 남아 있다.

003

세 번째 여정은 패션 플랫폼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던 시기이다.

PM으로서 나는 자사 제품의 패키징 디자인을 비롯해 제품 디자인, 광고와 배너, 영상 제작 등 그래픽 디자인 전반을 담당했다. 더불어 브랜딩 가이던스 작성, BI/BX 작업, UI/UX 설계와 코딩까지 겸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었다.


한 가지 일에만 머무르기보다 여러 분야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입사 초기에는 그래픽 디자인 위주의 업무를 맡았지만, 회사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웹 개발자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스스로 코딩과 UI/UX를 공부하며 해당 업무까지 맡게 되었다. 특히 대대적인 웹페이지 리뉴얼 작업에서는 전체 사이트의 디자인과 UI/UX를 혼자 책임졌고, 개발 과정의 검수와 후반 수정까지 담당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는 첫 커리어였던 모션 그래픽 경험을 살려 광고와 모션 영상, 배너, 포스터, 상세페이지까지 모든 이미지를 홀로 제작했다. 브랜딩 영역은 아쉬움이 남는다. 회사 여건상 대규모 브랜딩 작업은 불가능했기에, 가이던스 작성이나 컬러·폰트·로고 설정, 비주얼 방향성 제시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모든 학문은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는 말처럼, 디자인 역시 무수한 가지로 뻗어 있으나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분야의 작업을 경험하며 알게 된 것은, 디자인의 논리와 개념은 결국 하나로 통일된다는 점이었다. 그 통일성을 이해한다면, 새로운 분야의 디자인도 금세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004

네 번째 여정은 김밥 스타트업이다.

문제 해결자가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안된다면 어떻게 하면 되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김밥을 주 메뉴로 하는 요식업체를 프랜차이즈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브랜드 총괄 업무를 맡았다. 본인의 기존 커리어나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면 누구나 불안과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나 역시 ‘전문화하지 못하고 그저 얕고 넓게만 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 영역에만 머문다면 수많은 디자이너들처럼 평범해지는 것은 아닐까, 사람으로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이 끊임없이 따라왔다.


결국 성장을 위해서는 평범함을 벗어나 수많은 문제와 마주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자로 거듭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경영 전반에 직접 관여하며, 사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힘썼다.


기존의 모든 디자인 실무는 물론, 실내 인테리어, SNS 관리, 마케팅 집행, 운영 방향 결정 등 회사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통합적인 업무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크게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디자이너가 경영 전반에 관여할 때, 그 효율성은 놀랍도록 커진다는 사실이었다. 기업이 어떤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보여줄 것인지 스스로 설정하고, 그 방향에 맞춰 경영을 직접 이끌어 간다면, 단단한 소비층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아우르는 브랜딩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Career

001

기억에 남는 것들

작은 빌라를 가득 채우던 해 질 녘의 노을, 산과 맞닿은 놀이터에서 풍기던 습한 풀 냄새와 웃음소리. 흐릿한 몽타주처럼 스쳐 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사건이나 행동보다는 그때의 풍경과 날씨, 빛과 온도, 냄새들이 더 극적이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002

이제는 너의 그림을 그려야 된다.

학부 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철학적 개념을 담은 팝아트 작업으로 일본 미술전에 입선했지만, 당시의 나는 나만의 감성보다는 사실적 묘사에 치중한 하이퍼리얼리즘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 졸업 작품 또한 묘사에 중점을 둔 작업으로 진행했고, 그때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물체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본 모양과 내가 느낀 색, 그 순간의 감정, 곧 작가의 세계가 투영된 무언가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나만의 그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김윤수 작가는 1981년 『계간 미술』 가을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왜 그리는가? 누구를 위해 그리는가? 하는 일련의 물음에 돌아가는 일이다. 그 점에서 그림은 한 화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의 산물인 것이다.”


예전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면, 이제는 그림, 더 나아가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작가가 느낀 세계를 엿보는 일이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예술을 향유하는 여정 속에서 나는 사색에 잠기고, 새로운 생각과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순간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003

어느샌가 작품 활동에 대한 생각은 희미해져갔다.

주기적으로 갤러리와 미술관, 그리고 연주회를 찾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그림, 아니 예술이라는 것 자체를 더 사랑하는 게 아닐까.’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기쁨, 미술관의 고요한 공기, 화폭 속 세계가 뿜어내는 빛깔, 음악이 노래하는 삶의 향기. 모든 것이 아련하고도 행복한 기억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 속에서 ‘예술과 함께하는 삶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입시 시절 이후로 느껴본 적 없던 열망이 가슴속에서 뛰고 있었다.


그 두근거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 국내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강의는 물론, 바이올린을 배우며 삶을 조금씩 풍요롭게 쌓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예술을 품고 살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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